갓 태어난 손주를 품에 안고 맑은 눈망울과 방긋 웃는 얼굴을 바라볼 때 느껴지는 기쁨은 세상을 다 얻은 것만큼이나 크고 달콤하다. 자식 키울 때는 생계에 치여 느끼지 못했던 짠한 애정과 삶의 새로운 활력이 손주를 통해 샘솟는 듯하다. 그리하여 많은 시니어들이 "이제 손주 재롱 보는 것이 내 인생의 유일한 낙"이라 선언하며 온 정성과 시간을 쏟아붓기 시작한다.
매일 맞벌이 자식 대신 손주를 등하원시키고, 밥을 챙기고, 온종일 칭얼거림을 다 받아주는 일상으로 빠져든다. 하지만 손주의 맑은 웃음 뒤에는 서글픈 황혼 육아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한 해 두 해 지날수록 무릎과 관절은 망가지고, 밤마다 온몸이 쑤셔 밤잠을 설치는 날이 늘어간다.

몸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쳤지만, 자식의 경제적 어려움이나 직장 생활에 짐이 될까 싶어 아프다는 소리조차 마음 편히 꺼내지 못한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던 손주였건만, 시간이 흐를수록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 중압감은 감당하기 힘든 수준으로 치솟곤 한다.
'손주 바라기'가 부르는 비극?!! 타인의 삶에 얹혀 살아가는 노년의 위험
더 커다란 문제는 손주에게 온 삶을 매어두는 동안 정작 자기 자신의 인생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는 점이다. 손주가 성장해 유치원에 가고 초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점차 할머니, 할아버지의 손길을 멀리하게 될 때, 시니어들은 가슴이 뻥 뚫린 듯한 극심한 상실감과 우울증을 마주하게 된다. 그동안 내 취미도, 내 친구도, 내 꿈도 모두 포기한 채 오로지 손주만 바라보고 살았는데, 정작 남은 것은 노쇠해진 몸과 텅 빈 하루뿐이라는 자괴감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손주나 자식의 삶에 너무 깊이 몰입하는 것은 결국 타인의 삶에 얹혀 살아가는 것과 다름없다. 내 삶의 기쁨과 보람의 출처를 외부나 타인에게 둘수록, 그 대상이 멀어지거나 독립할 때 내 노년 전체가 뿌리째 흔들릴 수밖에 없다. 손주는 내 삶의 가치와 기쁨을 채워주는 보조적인 존재일 뿐, 결코 내 인생 전체의 목적이나 주인이 될 수는 없다. 자식과 손주라는 울타리 밖으로 걸어 나와 나 자신이라는 원형을 되찾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식 눈치와 손주 육아 사이?!! 내 삶의 주도권을 빼앗긴 부모들의 눈물
황혼 육아가 이어지면서 자식과의 관계 역시 예전처럼 순탄하지만은 않게 변하곤 한다. 부모 입장에서는 뼈를 깎는 희생으로 손주를 돌보아 주지만, 돌아오는 것은 "아이 버릇 망친다", "요즘 방식으로 안 키운다"는 자식의 서운한 잔소리와 지적일 때가 많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 자식 눈치까지 봐야 하는 현실 앞에서 부모들의 가슴은 까맣게 타들어 간다. 정당한 대가나 감사 인사는커녕, 어느새 손주를 돌보는 일이 부모의 당연한 의무처럼 전락해 버리는 것이다.
내가 내 삶의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자식의 필요에 끌려다니는 순간, 노년의 존엄성과 자유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나만의 시간도, 나만의 건강도, 나만의 인간관계도 모두 자식의 육아 스케줄에 맞춰 파편화되고 만다. 이렇게 주도권을 빼앗긴 채 흘려보낸 세월은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자식의 삶은 자식의 것이고, 내 삶은 오롯이 내 것이다. 이제는 자식에게 빼앗긴 내 삶의 핸들을 다시 내 손으로 꽉 쥐어야 할 때다.
건강한 독립을 위한 3단계 거절과 선긋기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자식과의 우애를 해치지 않으면서 건강하게 홀로서기를 할 수 있을까?
1단계는 '착한 할머니, 착한 할아버지'라는 프레임을 스스로 벗어던지는 것이다. 내 몸이 아프거나 나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는 자식에게 내 상태를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해야 한다. 무조건 참아내고 희생하는 것이 덕목이 아니며, 부모의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자식에게도 부담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2단계는 손주 돌봄의 범위와 시간을 명확하게 제한하고 선을 긋는 것이다. "주말이나 특정 요일에만 돌보아 주겠다"라거나, "오후 6시 이후에는 내 개인 시간을 갖겠다"는 식의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자식과 사전에 협의해야 한다.
3단계는 단호하지만 따뜻한 쿠션 거절의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다. 자식이 과도한 돌봄을 요청할 때 "너희를 사랑하지만, 내 건강과 삶을 지키기 위해 이번에는 어렵겠다"라며 제3의 아이 돌봄 서비스를 활용하도록 조언하고 안내해 주는 지혜가 필요하다.
내가 내 삶의 주인공?!! 진짜 내 인생을 되찾아줄 홀로서기
손주라는 어여쁜 보석에 가려져 있던 진짜 나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오늘부터 당장 시작해 보자.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운동이나 취미를 시작하고, 마음 맞는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며, 나만의 지식과 경험을 쌓는 시간에 몰입해 보길 권한다. 내가 스스로 바로 서서 활기차고 행복한 노년을 보내는 모습을 보여줄 때, 자식들도 마음 편히 자신의 삶에 집중할 수 있고 손주들에게도 더욱 존경스러운 어른으로 기억될 수 있다.

남겨진 인생의 주인공은 손주도, 자식도 아닌 바로 당신 자신이다. 타인을 위해 내어주는 희생의 삶에서 벗어나, 나 자신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홀로서기의 기술을 차근차근 실천해 보자. 오늘 당장 나만을 위한 작은 일정을 계획하고 밖으로 발걸음을 옮겨보는 것은 어떨까. 스스로 바로 서서 밝게 빛나는 당신의 당당한 노년이야말로, 이 세상 그 어떤 선물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아름답고 눈부신 인생 2막의 시작이 되어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