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광펜으로 표시한 학습 노트. AI킬러는 의심 문장을 원문 위에 하이라이트로 보여 준다.
'지원하게 되었습니다'와 '지원했다', '지원하였음'은 같은 사실을 전하지만 문장 끝의 모양은 전혀 다르다.
한국어는 이처럼 어미 하나로 높임과 격식, 시제와 말하는 이의 태도까지 바뀌는 언어여서, 기계가 문장만 보고 누가 썼는지 가늠하는 일이 영어보다 훨씬 까다롭다. 같은 뜻을 담는 그릇이 그만큼 여럿인 셈이다.
AI킬러를 운영하는 주식회사 에이디엑스스튜디오는 2일 서비스 현황을 내놓으며, 한국어로 직접 학습시킨 자체 모델을 이 검사기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았다.
2026년 9월 첫선을 보인 이 서비스는 두 달 동안 8만 8천 건이 넘는 글을 판정했고, 계정을 만든 이용자도 4,400명을 넘겼다고 회사는 전했다. 그 숫자를 떠받친 것이 한국어 판정이라는 설명이다.
회사가 무엇보다 한국어 학습을 앞세운 이유는 분명하다.
영어 글을 바탕으로 만든 판정 기준을 한국어 문장에 그대로 대면 엉뚱한 결과가 나오기 쉽고, 그 피해가 정성껏 쓴 지원서를 낸 사람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기 때문이다. 언어가 다르면 판정의 잣대도 달라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이 검사기를 설계한 출발점이다.
■ 어미와 조사, 한국어 문장이 흔들리는 지점
영어 문장은 단어의 순서가 비교적 단단하게 정해져 있고 동사의 형태 변화도 몇 가지 규칙 안에서 움직이는 편이다.
반면 한국어는 같은 어간에 붙는 어미가 여러 갈래로 갈라지고, 명사 뒤에 오는 조사도 문맥에 따라 끊임없이 모양을 바꾼다. 같은 내용이라도 겉으로 드러나는 글자의 조합이 훨씬 다양해지는 셈이다.
이런 변화는 글쓴이의 습관을 드러내는 단서이면서, 동시에 판정 모델을 헷갈리게 만드는 잡음이 되기도 한다.
어떤 어미가 자주 나오는지를 셀 때 한국어 특유의 활용을 이해하지 못하면, 사람이 자연스럽게 고른 표현을 기계적인 반복으로 잘못 읽을 위험이 생긴다. 같은 어미를 두고도 단서와 잡음을 가려내는 눈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명사 뒤에 붙는 조사 역시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어 화자는 같은 뜻을 전하면서도 조사를 빼거나 바꿔 문장의 무게를 조절하는데, 영어식 단어 단위 분석으로는 이런 미세한 차이를 제대로 붙잡기 어렵다. 겉으로는 사소해 보이는 조사 하나가 문장 전체의 인상을 바꿀 수 있는 언어라는 점을 판정 모델이 먼저 알아야 한다.
어순이 비교적 자유롭다는 점도 한국어 판정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함께 꼽힌다.
주어를 생략하거나 강조하고 싶은 말을 앞으로 끌어오는 일이 흔한 한국어에서는, 문장 구조의 규칙성만 보고 기계의 글이라고 단정하기가 쉽지 않다. 사람이 쓴 문장도 상황과 목적에 따라 얼마든지 깔끔하게 정돈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AI킬러가 한국어 특유의 어미와 문체를 판단의 잣대로 삼은 것도 이 때문이다.
문장 끝을 어떻게 맺었는지, 조사와 연결 표현이 어떤 흐름으로 이어지는지를 한국어 문법의 틀 안에서 읽어야 사람의 글과 기계의 글 사이 차이가 비로소 드러난다는 판단이다. 어미와 조사의 결을 하나하나 따라가며 읽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 격식체와 구어체, 거리가 먼 두 문체
판정을 어렵게 하는 한국어의 또 다른 특징은 격식체와 구어체 사이의 간격이 유난히 크다는 점이다.
친구에게 보내는 짧은 메시지와 회사에 내는 자기소개서는 같은 사람이 썼어도 어휘와 문장 길이, 끝맺음 방식이 완전히 달라진다. 한 사람 안에 서로 다른 문체가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것이 한국어 글쓰기의 일상적인 모습이다.
문제는 공들인 격식체가 겉보기에 AI 글과 상당히 닮아 있다는 데 있다. 공손한 어미와 빈틈없이 정돈된 문장, 감정을 절제한 표현은 사람이 공들여 쓴 지원서의 특징인 동시에 생성형 AI가 흔히 내놓는 문장의 모습이기도 하다. 겉모양만 놓고 보면 둘을 가르는 선이 흐릿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영어 데이터로 학습한 검사기는 한국어에서 이 둘을 가르는 기준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그 결과 성실하게 다듬은 격식체 자기소개서가 AI 글로 판정되는 일이 잦았다는 것이 에이디엑스스튜디오의 설명이다. 언어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판정이 가장 성실한 이용자에게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한 셈이다.
지원서를 내야 하는 입장에서 이런 오판은 단순한 불편을 넘어선다.
본인이 직접 쓴 글인데도 의심을 받으면 해명할 방법이 마땅치 않고, 멀쩡한 문장을 일부러 어색하게 고치는 일까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글을 쓰려는 노력이 도리어 부담으로 돌아오는 역설이 생기는 것이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지원자 몫이다.
AI킬러는 격식 있는 사람의 문체와 AI 특유의 정형구를 서로 다른 것으로 구분하도록 학습했다. 격식체 자체를 의심의 근거로 삼지 않고, 그 안에서 기계가 반복적으로 쓰는 틀에 박힌 표현을 찾아내는 쪽으로 판정의 초점을 옮긴 것이다. 공손함은 그대로 인정하고 상투성만 걸러 보겠다는 접근이다.
■ 한국어 글로 직접 가르친 판정 모델
AI킬러가 학습한 데이터의 중심에는 한국어 자기소개서와 격식체 글이 놓여 있다.
제출을 앞두고 검사기를 찾는 사람들이 주로 넣는 글의 형태를 학습 재료로 삼은 셈이어서, 판정이 필요한 문서 유형과 모델이 익힌 문서 유형이 서로 겹친다. 실제 쓰임새에 맞춰 데이터를 고른 설계라 할 수 있고, 판정의 정밀도도 그 지점에서 나온다.
에이디엑스스튜디오는 모델 설계의 출발점을 오탐 줄이기에 두었다고 밝혔다.
잘 다듬은 사람의 글이 억울하게 AI 판정을 받는 일을 먼저 막고, 그 위에서 기계 글의 신호를 찾아내는 방향으로 기준을 세웠다는 의미로 읽힌다. 의심의 폭을 넓히기보다 불필요한 오해를 먼저 줄이는 쪽에 무게를 실은 셈이다.
학습 대상을 특정 회사가 만든 AI 하나로 한정하지도 않았다.
ChatGPT나 Claude, Gemini 가운데 한 서비스의 문체를 외우는 대신 AI가 글을 쓸 때 드러내는 공통 패턴을 익혔고, 새 모델이 등장하면 데이터를 보강해 주기적으로 갱신한다. 한국어 자체에 대한 학습과 AI 글쓰기 패턴에 대한 학습이 함께 맞물려 돌아가는 구조다.
이렇게 만든 모델은 문서 전체에 0~100점의 점수를 매기고, 의심되는 문장을 원문 위에 하이라이트로 짚어 준다.
같은 글은 언제 넣어도 같은 점수가 나오도록 만들어, 이용자가 표현을 손본 뒤 다시 검사하면 그 차이가 점수로 확인된다. 한국어 문장 하나하나를 단위로 판단 결과를 보여 주는 방식이어서, 고칠 곳이 어디인지 바로 드러난다.
이런 판정을 받아 보는 검사는 무료로, 로그인을 하지 않으면 하루 3회까지 쓸 수 있고 계정으로 들어가면 제한이 없다.
별도 설치 없이 브라우저에서 바로 쓰는 방식이며, 한 번에 넣을 수 있는 분량은 1만 자다. 300자를 넘는 글이라면 판정이 더 안정적이라는 것이 회사의 안내여서, 문단 단위로 넣는 편이 좋다.
■ 한국어 판정이 남긴 숙제
한국어에 맞춘 학습이 오판을 상당 부분 줄여 준다 해도 판정이 곧 정답이 될 수는 없다.
AI킬러는 검사 결과를 증거가 아닌 확률 신호로 안내하고, 사람이 쓴 글이 AI로 표시될 가능성을 결과 화면에 함께 적는다. 한국어에 맞춘 모델이라도 판정의 한계를 숨기지 않고 이용자에게 먼저 알리겠다는 태도로 읽힌다.
회사가 문서 점수보다 문장 하이라이트를 더 중요한 정보로 꼽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어느 문장이 왜 의심을 받았는지 알아야 이용자가 자기 글의 습관을 돌아볼 수 있고, 그래야 검사가 글을 고치는 과정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점수라는 숫자 하나보다 문장 단위의 표시가 이용자에게 더 많은 것을 알려 준다는 뜻이다.
회사가 운영하는 블로그에서는 한국어 AI 탐지가 더 어려운 이유와 검사기의 원리·한계를 다룬 글도 운영하고 있다.
결과 화면에서 관련 글로 바로 넘어갈 수 있어, 점수의 배경이 궁금한 이용자가 따로 자료를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된다. 판정이 어떤 원리로 나오는지를 이용자와 나누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AI킬러 측은 “한국어에 맞는 판정, 문장 단위 근거, 그리고 숫자를 부풀리지 않는 운영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 세 기준 가운데 첫머리에 언어를 놓은 셈이다. 회사는 새 생성형 AI가 나올 때마다 학습 데이터를 보강해 판정 모델을 갱신해 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서울 마포구에 본사를 둔 에이디엑스스튜디오의 이 검사기는 웹사이트(aikiller.app)에서 설치 없이 이용할 수 있다.
문장 구조와 문체가 영어와 크게 다른 언어를 다루는 만큼, 한국어로 직접 익힌 판정 기준이 실제 이용자의 오판 부담을 얼마나 덜어 줄지가 앞으로 지켜볼 대목이다. 정교한 판정일수록 성실한 글쓴이를 지키는 힘도 커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