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선보 칼럼] 나이가 들수록 내 취향이 희미해진다는 것에 대하여

심선보

가만히 거울을 보거나 일상을 돌아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모든 것에 무덤덤해졌을까.’

 

젊은 날엔 좋고 싫음이 어찌나 선명했던지. 음악 하나를 골라도 남들과는 달라야 했고, 옷 한 벌을 사도 내 마음에 쏙 들어야 직성이 풀렸다. 마음에 안 드는 상황은 참아내기도 힘들었고, 내 생각과 기준이 세상에서 제일 확실하다고 믿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삶에 거친 모서리들이 다 깎여 나간 것처럼, 모든 게 둥글둥글해지다 못해 흐릿해졌다.

 

요즘은 무엇을 물어도 대답이 늘 비슷하다. “글쎄, 아무거나 좋아,” “다 거기서 거기지 뭐.” 좋고 나쁨의 경계가 흐려지고, 그냥 대충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는 게 속 편하다. 누군가 ‘그게 그거지’ 하고 어깨를 툭 치면, 굳이 반박할 힘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어른들이 농담처럼 하던 말들이 요즘 들어 참 뼈저리게 다가온다. “육십이 넘으면 학벌이 좋으나 나쁘나 다 부질없고, 칠십이 넘으면 얼굴이 예쁘나 안 예쁘나 똑같고, 팔십이 넘으면 남편이 있으나 없으나 다 매한가지다”라는 말.

 

처음엔 그저 세월이 참 허무하다는 농담인 줄 알았다. 하지만 살아갈수록 그 말속에 숨은 진짜 의미가 실감 난다. 젊을 때 그렇게 목숨을 걸고 아등바등했던 조건들이나 타이틀, 남들의 시선 같은 것들이 지나고 보니 얼마나 부질없는 껍데기였는지 깨닫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나이가 든다는 건, 삶의 온갖 거품이 걷히고 진짜 중요한 것만 남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젊은 날엔 나를 증명하겠다고 날카로운 취향과 단단한 잣대를 훈장처럼 달고 살았지만, 알고 보니 그 잣대로 나 스스로를 꽁꽁 묶어두고 있었던 거다.

 

매일 입던 옷만 찾고, 새로운 맛집을 찾아가는 모험보다는 늘 가던 익숙한 밥집이 편하고, 싸우고 부딪히는 것보다 ‘그럴 수도 있지’라며 웃어넘기는 요즘. 누군가는 이를 보고 ‘취향이 다 죽었다’, ‘열정이 식었다’고 혀를 찰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열정이 식은 게 아니다. 그동안 살아온 세월의 무게를 견뎌내며 터득한, 나름의 편안한 해탈에 가깝다. 굳이 힘 빼지 않아도 될 일에 마음을 쓰지 않고, 나를 피곤하게 만드는 까다로움들을 하나씩 내려놓는 법을 배운 거다. 날이 서 있던 마음이 무뎌진 그 자리에, 비로소 너그러움과 여유가 스며든 셈이다.

 

그러니 내 취향이 좀 흐려졌다고 해서 서운해할 필요는 없다. 세상 파도에 부딪히며 모서리가 닳고 닳아, 이제는 어떤 풍파도 부드럽게 받아낼 수 있는 나만의 둥근 마음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일 테니까.

 

오늘도 뾰족하게 살아가느라 애쓴 나에게, “다 부질없고 편한 게 최고야”라며 다독이며 내리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의 여유.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나이가 내게 준 진짜 내 취향인지도 모르겠다.

 

 

[심선보]

칼럼니스트

페이브로 대표

월간 시사문단 신인상 시부문 작가 등단

저서 ‘마음이 머물다 간 자리’ ‘초보를 위한 NPL 투자 가이드’

메일 : ssonbo@nate.com

 

작성 2026.11.06 11:14 수정 2026.11.06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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